검은장막 숲에 큰 불이 났다. 누군가가 불을 질렀다거나 해서 난 불은 아니었다. 그냥 그날따라 유독 건조한 날이었고, 그날따라 마른 풀들이 많이 나왔으며, 자연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화가 되고는 했었으니 운이 나빴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불타고 있는것도, 그 불에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죽은 것도.
그저 운이 나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불 타고 있는 마을과 숲을 바라보며 어린 미코테는 생각했다. 이제 어디서 살아가야하지? 이렇게까지 크게 난 불이니 그리다니아 쪽에서 화재 진압과 더불어 그곳에 사는 이들을 살펴보러 오겠지만 어린 미코테는 그들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대로 어디 멀리 떠나버릴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즈음 한 인기척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어떻게 느꼈는지 모를 기척이었지만, 살고싶은 본능이 외치는 감각이었을지 아니면 그저 기척을 잘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미코테는 그 날 그를 따라간 것을 후회하냐 묻느냐면 고개를 내저을 수 있었다.
" ...갈 곳이 없는가보지? "
" 보면 몰라? ... 다 타버려서 없잖아. "
" 그럼, .... 날 따라오겠나? "
어린 미코테는 자신을 보며 말하는 남성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로브에 붉은색 가면. 하관만 보이는 모습에 말투는 퍽 퉁명스러웠으나 아이는 그의 목소리에 타박이거나 귀찮음이 묻어나오지 않고있음을 알았다. 평소였다면 수상해 보이기만 하는 그 인물을 따라갈리 없었겠지만, 아이는 제 말대로 다 타버려서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것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있으면 귀곡부대원들에게 발견되어 그리다니아로 옮겨질 것이었다. 아마도 고아원 같은 곳에 보내지겠지. 애초에 좋은 감정이라곤 없었던 그리다니아에서 살아가는 것 보다 눈 앞의 이상한 로브를 입은 남자를 따라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 그쪽이랑 가면 뭐가 좋은데? "
" 뭐든. ... 네가 원하는건 다 들어주마. "
" 왜? "
"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
아이는 남자의 말에 의문을 가졌으나, 가진 정도로만 끝냈다. 더 물어봤자 자신은 이해하지도 못할 말들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아이는 응이라는 대답대신 남자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 어디든 여기보단 좋은 곳이지? "
" 그럼, 훨씬 좋은 곳이지."
남자는 제 소맷자락을 잡은 아이를 가볍게 안아올리더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그리다니아 사람들이 화재현장을 발견했을 땐 그 마을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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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트셀크는 그날따라 변덕으로 갈레말 제국을 나왔다. 본래라면 국부로 살며 정무를 봐야하지만 그저 변덕이 일으킨 행동이었다. 잠깐동안 솔의 몸을 연기하는 인형을 집무실에 만들어두곤 에메트셀크는 오랜만에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 에오르제아 땅을 밟았다. 이곳은 다른 아씨엔들이 와서 활동하는 기점지였어서 굳이 안와도 되는 곳 이었지만 에메트셀크의 본능은 이곳으로 가야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한 숲에서 큰 불이 난 것을 본 그는 그곳으로 향했다.
가야만 한다 생각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무슨 변덕으로 그런 곳을 갔는지 모르겠으나, 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제 눈앞에 보이는 작은 미코테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가 '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과 달랐으니, 그의 눈에 보이는 익숙하고도 그리운
화마가 넘실대는 숲 속에서 에메트셀크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아, 젬. "
작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러본다. 제 오랜 친우를 부른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는 작은 몸은 그가 제 오랜 친우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일부러 기척을 크게 내며 다가가자 저를 향해 돌아보는 얼굴이 보인다. 아직 어려서 젖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에메트셀크는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반쪽도 안되는 영혼인데도 제 기억 속 그 사람과 똑 닮은 모습에 에메트셀크가 헛숨을 들이켰다.
" ...갈 곳이 없는가보지? "
" 보면 몰라? ... 다 타버려서 없잖아. "
" 그럼, .... 날 따라오겠나? "
에메트셀크는 아이의 대답에 탄식했다. 지금 불타는 이곳이 너의 집이구나.
그는 아이의 옆에 서서 말했다. 자신과 가지 않겠냐고, 사실 에메트셀크는 아이가 싫다고 하더라도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이였다. 자신이 세계통합을 해서라도 되돌리고 싶었던 동포들 중 가장 그리웠다고 할 수 있는 이였다.
비록 영혼이 반절도 채 되지 않아 불완전한 것에 불과했지만 수 없이 보고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인데 놓칠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로브의 소맷자락이 당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긍정의 대답 대신 보여지는 행동에 그는 당장에라도 갈레말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른채로 소맷자락을 잡은 아이를 안아들었다.
다시 만난 너는 너무나도 작았다.
작은데다 자신이 에테르를 조금만 움직이면 그 작은 몸이 인형마냥 축 늘어질 터였다. 본래의 너라면 무슨 소리냐 하였겠으나 이곳에 있는 너는 다르지만 너였다. 그 사실이 기쁘면서도 싫어서.
에메트셀크는 아이를 품에 안은채 손가락을 튕겼다.
돌아가자, 우리들의 동포들이 있는 곳으로.
라하브레아는 탐탁찮아 하겠으나, 엘리디부스라면 반겨줄 것이다. 동포가 한명이라도 되돌아온다면 좋아할 녀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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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남자의 품에 안긴 것 까진 좋았으나, 그 이후 어떻게 어디를 통과해왔는지 아이는 기억이 애매했다. 딱, 소리가 나고 슈웅 하는 소리가 나며 어딘가로 이동했던 것은 알겠으나 도착하고 난 곳은 으리으리한 성이었다. 딱 보아도 비싸보이는 융단이 깔려있고, 사치품들이 가득한 방안은 침대라도 없었으면 무슨 방인지 조차 모를 곳이었다. 게다가 언제 했는지 몸도 옷도 깨끗한 새옷으로 갈아입혀진 후 였다.
낯선 공간에 혼자라서일까, 한껏 긴장한 채로 앉아있으니 끼익,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흰머리가 희끗하게 올라오고, 노화가 진행되었음을 알려주는듯 손이며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귀족, 혹은 그 위 임을 알려주는듯 화려하게 입은 옷차림에 아이는 제 손에 잡히는 이불자락을 꽉 쥐었다.
부족, 아니 마을의 폐쇄적인 성향 탓에 아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보았다. 굳이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가 다 큰 성인을, 그것도 누군지도 모르는 이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찌됐건 낯선이의 등장에 경계하고 있을 무렵.
방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제 뒤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그 주변인들이 폐하.라며 걱정을 토해냈으나 그 사람의 말에 입을 닫고는 조용히 방 밖으로 향했다. 그 사람은 모두가 나가자 고갤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사람을 마주바라봤다.
보이는 흰머리에 이마에 있는 둥그런 무언가,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금색 눈동자는 아이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말 없이 있다. 말을 꺼낸 것은 상대방이었다.
" 몸은 좀 어떠냐. "
" ... 누구야? "
" 날 따라오겠다 했으면서 그세 잊은거냐. "
" ? 내가 따라가겠다 한건 왠 검은 옷을 입은 남자였는데, 그쪽 같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
아이의 대답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의미로 쉬는 것인지 한참을 생각하던 때
" 그래서, 네 이름은 뭐지? "
" ... 카냐, 카냐 라 헤젠 "
" 카냐... 그래. 그 몸은 그 이름이군. "
남자의 반응에 카냐는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자신을 원래부터 알고있었던 것 마냥 대하는 태도에 어린 나이임에도 기시감을 느낀건지 아님 그저 카냐가 낯선 곳에서 예민하게 반응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의 반응에 의문을 가진채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런 카냐의 머리 위로 큰 손을 텁, 하고 덮어보이더니 서툴게 손을 좌우로 움직였다. 마치 쓰다듬는 듯한 모양새로 몇 번 움직이고는 카냐의 옆에 푹 소리를 내며 앉았다.
"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
" ...솔이다. 솔 조스 갈부스. 그냥 솔이라고 부르거나 네 편할대로 불러라 "
" 그럼 솔이라고 부를게요. "
어색한 존댓말 속에서 카냐가 고갤 끄덕였다. 마을 밖 상황에 문외한이었던 만큼 잘은 모르지만 제 옆에 앉은 이가 제법 잘사는 축에 속한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런 방이 휘황찬란할 정도인데다 하인들도 데리고 다닐 정도라면 어디 높으신 분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통성명까지 하고 난 이후 카냐가 솔의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이 점잖게 들어와라. 하고 말하자 문을 열고 아까 봤던 하인 중 한명이 들어왔다. 딱 봐도 절도있게 인사를 한 하인은 솔의 옆에 앉아있는 카냐를 보며 흠칫 놀랐으나, 이내 솔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 폐하, 오후 일정이 아직 남으셨습니다. 이제 슬슬 이동하셔야합니다. "
" 아아. 그런가. ... 내가 없을 동안 여기서 얌전히 있거라. "
" 다시 올거에요? "
" 그래. "
솔이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냐는 일어난 솔을 한 번 바라보고는 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언짢은 듯 귀가 내려앉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애가 얼마나 자기 감정을 숨길 수 있겠냐만은 솔은 카냐의 머리를 어색하게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는 방 밖으로 향했다. 하인 역시 나가버려서 텅 빈 방 안에서 카냐는 침대에 걸터앉아 발만 동동 굴렀다.
이 넓은 방안에서는 카냐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마을에서처럼 활을 들고 사냥을 나갈수도 없었고,
어린 동생들이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방 안에서 카냐는 침대 위에 푹 가라앉듯 누웠다.
부드러운 소재의 침구에 솔이라는 남자가 올 때까지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솔 그 남자가 온다면 물어볼 것 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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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냐가 갈레말 제국에 온 이후로도 시간이 꽤 지났다. 근 몇달간 생활하면서 카냐가 깨달은 것은, 자신을 데려온 이가 제국의 황제라는 점이었고. 그런 자신은 황제의 수집품... 같은 느낌으로 황실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있는 것 같았다. 애완동물 마냥 길러지고 있다고 야만족의 아이를 황제가 거두어서 기르고있다며 수근대는 것을 들었으니 아마 거기서 더 큰 의미가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카냐는 생각 외로 얌전하게 지냈는데, 첫째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방 밖으로 카냐가 안나간다는 점과 어딘가를 나가야 한다면 언제나 솔 황제의 품에 안겨서 나갔으니, 다른 갈레안인들과 대화를 해본적도 없었고, 감히 황제가 애지중지하는 아이를 해치려는 비상식적인 이들은 카냐가 지내는 곳에는 없었기 때문에 얌전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좀 불쾌한 티를 내긴해도, 카냐가 지내는 곳의 사용인들은 모두 카냐가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으니. 카냐가 그리다니아에서 생활 할 때 처럼 날을 세우고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 있잖아요 솔. "
" 무슨일이냐."
" 내 앞에서는 젊어지면서, 왜 밖으로 나갈 땐 다시 늙어지는 거예요? "
" 그건... "
오늘도 여전히 같은 방, 같은 장소에서 젊어진 솔이 카냐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여유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간식을 하나 집어먹던 카냐가 그에게 물었다. 조용히 카냐의 머리를 쓰다듬던 솔... 아니 에메트셀크는 어떻게 말해야할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든걸 말하자니 저 작은 머리가 다 이해할지도 모르겠고, 되도록 자신의 정체나 세계의 존속같은 이야기들은 카냐가 좀 더 크고나서 말해주고 싶었기에
" 내 마음이다. 주변에서 시끄러워지는 것도 별로고 말이지. "
" 그치만, 솔이 계속 젊어질 수 있으면 황제가 죽지 않아서 나라가 더 안정적이게 되는거 아니에요? "
카냐의 말에 에메트셀크는 잠시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말이 없어졌으나, 이내 자신이 이 나라를 만든 이유를 다시 생각하며 제 앞에 있는 작은 미코테의 머리를 그저 헝클일 뿐이었다.
" 그렇지만, 황제가 죽지않으면 괴물로 보는 것들이 많아질거다. 그런건 썩 유쾌한 건 아니라서 말이지 "
" 그렇겠네... 귀찮겠다 확실히 "
마카롱 하나를 집어먹으며 카냐가 답했다. 카냐가 보고있는 솔은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으나, 이렇게 이따금 물어보면 통쾌하진 않아도 답을 해주고는 했으니 그 답에 만족하고는 했다. 물론 카냐의 머릿속에선 저게 그냥 넘기기 용으로 답한다는 것을 알고있었으나. 왜 저렇게 답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넘길 뿐이었다. 좀 더 크면 말해줄까? 하는 생각을 가만히 하면서.
" 저번에 가져다 준 책 다 읽었어요. "
" 꽤 빨리 읽는군 "
" 공용어로 되어있으니까... "
" 갈레말 언어로 된 것은 아직이던? "
" 여기 글자 어려워요. "
가뜩이나 공용어도 지금보다 더 어릴 때 형에게 겨우 배운 글이었다. 그래서 공용어로 된 글이어도 어려운 글은 제대로 못읽는데, 하물며 갈레말 언어를 금방 익힐 수 있을리가. 그래도 솔의 도움으로 교사가 붙어서 꾸준히 배우고는 있으니. 뭐 언젠가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겨우 자음모음정도만 아는 정도지만 하다보면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것이고, 하다보면 언젠간 솔이 하는 어려운 말도 이해할 수 있게되겠지.
" 다음엔 언제 올 거예요? "
" 글쎄다. 일이 최근 바빠졌으니, 한동안은 또 못올 것 같다만. "
" 난 솔이 지금보다 자주 왔으면 좋겠는데. "
안될걸 알지만서도 괜히 한번 투정을 부려보고는 집무를 위해 카냐의 방을 나서는 그를 가만히 배웅해주었다. 아무리 집무실과 카냐의 방이 가깝다지만, 카냐의 방에서 국무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카냐도 그걸 알았기에 군말없이 보내주는 거기도 하였다.그냥 가만히 바랄 뿐이었다. 그 일이라는 것이 얼른 끝나서 그냥 자신과 있을 시간이 더 많아졌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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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카냐의 삶은 단조로웠다. 이따금 솔이 붙여준 가정교사에게 갈레말 언어와 역사를 배우고, 그곳의 기술을 배웠으며. 이젠 정복전쟁에 나가지않는 솔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늙어버린 황제의 곁에 남은 페이지로 불리긴했지만, 카냐의 위치는그냥 말동무나 해주는 어린 손자 느낌이었다. 적어도 남들이 볼 때의 두 사람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둘 만 있을 땐 여전히 솔은 젊은 모습을 유지했고, 카냐는 늙은 할아버지의 모습보단 젊은 모습인 쪽을 좀 더 선호했으니까.
" ...래서, 다음엔 그 기술을 접목시켜 보는건 어떠냐고 해보긴했어요. "
" 꽤나 재밌는 발상이군, 그래. 네 생각은 어떻지? 잘 될 것 같으냐? "
" 잘 모르겠는데... 메테오 계획이 너무 무모한 것 같아요. "
상공의 달을 떨궈서 에오르제아를 초토화 시키겠다니, 정복전쟁의 목적은 영토를 늘리고 식민지를 늘려서 본국의 국민들을 좀 더 평온하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던건가. 그대로 쓸만한 땅을 초토화 시켜버리면 복구하는 과정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오래걸릴텐데. 이걸 적어도 눈 앞의 솔은 알고 있을텐데 왜 승인해줬는지 모를 작전이었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느정도 눈치도 챙기게 된 그로서는 그냥 무모한 것 같다. 딱 그 한마디만 하고선 별 다른 이야기는 더 꺼내지 않았다.
" 정치 이야기는 더 듣고싶지 않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
" 다른이야기라 해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지않아요? "
카냐는 그 어린날 솔에게 이끌려 황궁으로 들어온 이후로 궁 밖으로 나간 적이 손에 꼽았다. 정확히는 나갈 일이 없었다. 황제가 싸고 돈 것도 있지만, 카냐 본인도 나갈 일을 못찾았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게다가 자신이 밖에서 어떤 말로 불리는지 알고있는데 굳이 나가서 소음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 그럼 내가 해주는 수 밖에 없나. "
"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해줄건데요? "
" 찬란했던 한 지역을 말해줄까. 생명이 싹트면 그 생명을 보존하고, 관찰하는 곳이 있었다. "
솔이 해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었다. 책에도 나오지 않는 어딘가의 이야기를 마치 가봤다는 듯 이야기해주었으니까, 실제로 있었다 말해주고있지만 아무리 책을 찾아도, 찾아오는 교사들에게 물어도. 그런 곳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답만 들려왔으니까 그냥 솔이 자신에게 해주기 위해서, 자신을 아직 어리게만 봐서 해주는 공상으로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카냐는 그것이 좋았다. 자신을 생각해서 해주는 거니까, 즐거웠으면 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그것이 좋지 않을 인간이 몇이나 있을까.
" 두 발로 걸어다니는 상어라니,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
" 없긴 왜 없어. 내가 이 두눈으로 보고왔는데. "
" 그렇지만 일사바드도 그렇고, 알데나드나 오사드에도 그런 마물이 있다는 말은 없었는데요. "
" 흐음 아직 발견안됐나. 뭐, 괜찮아. 어차피 나중엔 너도 알기 싫어도 알게될테니 말이다. "
솔이 하는 말의 90%는 못 알아먹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그래도 내용자체는 재밌으니까. 뭐 곧있으면 갈레안족 나잇대로 성인식을 치를 나이이기도 하고, 좀 더 크고 솔이 죽을 나잇대가 된다면 '솔 조스 갈부스'라는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같이 세상을 보러 떠나자고 했으니까.
" 빨리 성인식을 하고 싶어요. 나는 공식적인 황실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솔이 해준다했으니까. "
" 빨리 어른이 되어봤자 쓸모없을텐데도 "
" 그렇지만, 어른이 되면 너랑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잖아. "
반짝. 매우 찰나의 순간. 솔... 아니 에메트셀크의 눈에 보였다. 찬란하게 빛나는 친우의 혼을.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아젬의 크리스탈을 따로 쥐어준것도 아닌데 마치 기억을 되찾았다는 듯. 그때 그 시절처럼 말해오는 모습에 평소처럼 답하려다가도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 ... 솔? "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이 아는 그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호칭에 번뜩 정신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이 아이는 자신이 아는 친우가 아님을 알지만서도, 방금 그것은 너무나도 그리웠던 사람의 목소리였기에. 에메트셀크는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 급히 해야 할 게 생각났다. 오늘은 일찍 가봐야겠어. "
" 많이 급한거예요? "
" 그래, 조금 걸릴지도 모르니 기다리지말고 그냥 자라. "
자리에서 일어나 카냐의 머리를 두어번 서툴게 쓰다듬어주고선 에메트셀크는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달라진 행동에 카냐만 의문을 가질 뿐이었지만. 아직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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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조정자인 엘리디부스에게 혹시 윤회자들이 따로 기억 크리스탈 없이 각성하여 행동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으나 그런적 없다는 대답과 더불어 기억 크리스탈로 각성시키지 않으면 윤회자들이 깨닫는 일은 절대 없다는 대답까지 듣고 온 참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때 들은 그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의문으로만 남은 채 시간은 흘러갔고.
조촐하게 치뤄지는 카냐의 성인식 날이 다가왔다.
성인식이라 해봤자 거창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인 황실 행사도 아니었을 뿐더러 애초에 단순히 황제가 아끼는 것이라 도구 취급이 없을 뿐이었지 카냐의 공식적인 위치는 '수집품'이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카냐는 솔만 제 곁에 있어주면되었고, 다른이들이 어떻게되던 상관없는 것이었다.
어린날 잃어버린 애정을 그가 전부 채워줬으니까.
" 마을에서는 어른이 되는 날, 달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어요. "
" 달의 신? "
" 네, 그렇게 기도를 올리는거에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할 시련들을 잘 이겨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
" 그런걸 믿다니, 시시하군. "
" 달의 수호자들이니까요. "
카냐가 지내는 방. 마주 본 두 사람이 조촐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봤자 가벼운 와인과 안주가 전부였지만. 나름 성인이 된다는 뜻에서는 의미 있는 만찬이었다.
" 성인식 날 줄게 있다고 했잖아요. 어떤거예요? "
" 아아, 그랬지 참. "
에메트셀크가 손가락을 딱, 튕기더니 허공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카냐의 앞에 나타났다. 기억 크리스탈처럼 보이는 주황색의 물건에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 선물이다. 이걸 가지면 내가 이제껏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될테지. "
" 기억 크리스탈 아니에요? 여기에 뭐가 들어있길래.. "
카냐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크리스탈을 집었고, 크리스탈은 본 주인에게 감응하듯 눈부신 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얌전히 카냐의 손에서 은은하게 빛날 뿐이었다.
" 어때, 기억에 이상은 있나? "
" ... "
에메트셀크가 물었음에도 카냐는 조용했다. 기억 크리스탈에 이상이 있나? 그건 아닐터였다. 아젬의 자리의 크리스탈은 우리들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만들어 진 것을 자신이 소지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물론 그 안에 자신의 사감을 좀 넣어두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발견했을 땐 이미 그 안에 여러 기억들이 있었었다.
아젬과 자신의 추억, 휘틀로다이우스까지해서 세사람의 추억이라던가. 자신이 크리스탈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기억에는 너무나도 그리웠던 추억들만이 있었던터라 이상이 있을리가 없었다.
" ... 하, 데스. "
" 어서와, 로샨. "
이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눈 앞의 어린 미코테에 에메트셀크는 환희에 가득찬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다.
사랑해 마지않는 연인이. 그리워 미칠 것 같았던 사람이.
드디어 제 곁으로.
" 왜, 왜... 왜 나를 지금 찾아냈어. 안돼. 이러면 모든게 꼬여버려. "
" ... 뭐? "
" 너는 나를 지금 만나선 안돼. 지금은 아니야. 아직,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어 하데스. "
그리고 반면 카냐.. 아니, 마지막 아젬이었던 로샨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왜 하데스와 같이 있는가, 자신이 왜 그때의 기억을 다시 기억하게 되었는가. '카냐'의 자아가 사라지고 '로샨'의 자아만 남은 지금은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일전에 과거 선배님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자신은 지금 여기 있으면 안됐다. 적어도 이 나잇대면 모험인지 뭔지 하는걸 시작해야 할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좋은 곳에서 옛 연인과 마주하고 있다고? 어딘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그런거였다.
" 알아듣게 설명해라. 왜 만나면 안된다는 거지? "
" 말해주면 안돼. 말할 수 없어. ... 미안해, 하데스."
이해 못한다는 얼굴을 하는 하데스를 보며 로샨은 인상을 쓸 뿐이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자신은 떠나야했다. 모험을 떠나든 뭔가 다른걸 하든. 적어도 여기 있으면 안된다는 것 즈음은 알 수 있었다. 텔레포 마법을 시전 할 수 있는 몸이어서 다행이었다. '카냐'였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몸의 종족은 에테르를 다룰 수 있는 종족인듯 싶었으니까. 다행이지, 다루지 못하는 종족이었다면 여러모로 귀찮았을테니까.
상황을 보니 하데스는 지금의 모습이 에테르를 다루지 못하는 종족이라해도 본질자체가 달라서 에테르를 사용할 수 있을터였다.
하지만 그가 아직 그시절의 버릇이 있다면, '나'와의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면.
" 왜 설명도 안하고 가버리는지 궁금하겠지, 그때도 지금도. 장소와 시간만 달라졌지 똑같아졌네. "
" 제대로 설명을 해! 왜, 왜 안된다는거냐! "
"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치만 우리는 나중에 다시 만날거야 "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해주는 상황이 참 애석했다.
" 그렇지만, 그때의 너가 지금의 이 기억을 갖고있으면 안돼. "
" 뭐..? "
" 지울 순 없으니까, 가려둘게. 지금 이 몸과의 기억만. 괜찮아 나중에 되면 다시 기억할 수 있어. "
" 로샨! "
기억의 봉인식은 어려운 술식이었다. 상대가 얌전히 있어도 까다로운 판에 눈 앞에서 격하게 반항하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은 거의 뭐 도박에 가까웠다. 그래도 너와 나의 동일한 기억을 봉인하는 것 뿐이니까. 아주 나중에, 나중에 네가 명계로 가게 된다면 그때 풀릴 거야. 우리들은 명계에 조금 더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기억할 수 있으니까.
" 괜찮아. ... 괜찮아 하데스. "
" 안괜찮아! 제발, 로샨..!! 만이천년이다. 너를 찾아 헤멘게 만이천년이야! "
"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버티자. "
술식이 돌아간다. 술식 특유의 태엽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 사랑해, 하데스. 지금의 삶도 결국은 '나'니까. 나중에 다시 만나더라도 널 좋아할거야. "
"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난 네가 아니면 그런 건..!! "
" 아니야. 반절 밖에 없다해도 이건 나야. 네가 더 잘 알잖아, 이 아이와 지내오면서 많이 느꼈잖아. "
하나씩 맞물려가기 시작한다. 아주 잠깐일거야. 만이천년의 기다림보다는 확실히 짧을테니까.
" 그렇지만 로샨, 내가 바라는건..! "
" ■ ■ ■ "
술식이 완성됐고, 발동한다. 환한 빛이 방안을 가득채우고. 기억의 봉인이 잘 되었는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잘 됐길 바래야지. 이 몸의 주인은 아직 여기 있어선 안됐다. 아니 그와 아직 만나서는 안됐다. 급하게 텔레포를 시전했다. 이 몸에 남은 기억속의 장소를 적당히 골랐다.
초목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았었구나,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건 좋은거지.
화재만 아니었어도 좋았을텐데, 아이야. 너는 비록 나지만 내가 아니지. 그렇지만 본질은 똑같을거라 생각해.
어쩜 이렇게 내 단점만 부각됐는지. 희한한 영혼이야. 나도 그녀석들 처럼 색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
적당히 이 몸의 기억도 봉인을 걸어둔다. 자라오면서의 중간 기억이 조금 날아가겠지만, 그정도 위화감은 그냥 넘길 수 있을것이다.
마침 지나가는 상단마차로 보이는 것이 있어서 부탁하니 근처 대도시까지 태워준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그럼 잠시 나는 다시 사라질 시간이었다.
아직은 내가 나오면 안돼.
내가 나오는건 네가 '내'힘을 쓸 때니까.
애초에 기억이 있던 크리스탈도 다시 하데스에게 주고왔으니까, 아마 '내'가 나오는건 아주, 아주 나중이겠지.
괜찮아 여러 고난도, 역경도 많을테지만 너는 잘 이겨낼 수 있을거야. 반절이긴 해도 '나'의 혼을 지녔으니까.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자, 다시 태어난 '나'
네 앞길에 축복만이 있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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