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ightHouse & ObiArea
나를 가라앉게 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등대에서 지낸 것도 시간이 꽤나 지났다. 폐허와도 같았던 모습은 이제 어느정도 사람사는 모습을 갖췄고, 풍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부족한 모습도 아니였다. 대기중의 엔소프 농도 탓에 순찰이나 농사일이 아니라면 지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몇 없었지만 자신은 적어도 이곳저곳 다니며 움직여서인가 지상도 지하도 꽤나 자유롭게 왕래했던 것 같았다.
마지막 전투 이후 몸이 어느정도 회복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던것 같았다. 지상으로 올라가 혹시 모를 습격등에 대비해 순찰을 나간다거나, 지하 도시 복구에 힘을 쓴다거나 등의... 오비지구 군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곳 사람들과 딱히 좋은 감정으로 교류가 있던것은 아니였지만 다행인지 이지스가 이곳 관리자로 남게 되면서 저쪽에서 먼저 저에게 화풀이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딱히 그들이 저에게 화풀이 해도 변명할 거리는 없었지만 구태여 입밖으로 내뱉지 않고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을 해왔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정도 정리가 끝나고는 저도 이곳에서 꽤 개인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성당에 있는 앨리스에게 찾아가 안부인사도 건네고, 옆에서 알려주는 요리도 배우면서 성당 아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성당 근처에서 지내는 맥의 농사를 도와주기도 하고, 발닿는대로 여행을 다녀오는 건지 매번 찾아와서 이것저것 쥐어주고 가는 지우랑도 대화하며 등대에서의 생활을 보냈었다.
[ 나야 늘 그대로지. 편지로 설명할만한 사항은 아니다. 궁금하면 너도 내 밑으로 들어오던가. ]
[ 별 일 없으셔서 다행이에요. 편지로 설명할만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만나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 ]
보이드 대령님과는 그날 이후로 자신이 먼저 간간히 편지를 보내곤했다. 디바이스가 멀쩡하다면 서로 연락하기 더 편했겠지만 디바이스가 멀쩡하진 않았으니. 이따금 오는 답장을 크리처가 물고 찾아오는 것만 빼면 편지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처음엔 제 편지의 답을 크리처가 물고오는 것에 조금 경계하기도 했었는데 자꾸 보다보니 적응이 된건지. 전서구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타닐씨 농사 진짜 못하시네요. "
" 맞고싶다고 힘들게 말하는거 같다? "
맥과 농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해프닝도 좀 있었지만, 그래도 그점을 제외하면 나름 평화로운 일상이였다. 일전에 티르 나 노그에서 맞았던것에 저러는가 싶긴한데 애초에 그때 원인제공자는 맥이었으니까. 설마 그건 잊고 나한테 맞은것만 기억하는건가?
" 다음엔 무슨책 들고올까요? 형이 보고싶은거 있음 그걸로 가져올게. "
" 글쎄... 별자리? 밤에 하늘 볼때 별도 보게 되니까 궁금하긴해서. "
" 좋아. 그럼 다음엔 별자리 책으로 가져올게요. "
언제부턴가 자꾸 지우가 저한테 찾아와서 차 종류라던가, 책이라던가 같은 것들을 쥐어주고 가기 시작했다. 한두번정도는 아무말 없이 받았는데 어느순간부터 계속 이어져 왜 이러냐 물으니 내가 취미를 찾았음 좋겠다고 한다. 취미가 있었지만, 없어진 만큼. 다시 찾길 바라는걸까. 그나마 있던 취미를 없앴던 것도 그닥 좋은 이유로 없앤것은 아니였으니까.
짧게 과거를 생각해보고, 관뒀던 취미를 다시 할까 싶지만서도 이곳에서 구하기는 힘든 물건인데다 다시 하고싶단 마음도 들지 않아 다시하려는 시도는 하지않았다. 이제 남은 유일한 취미라고 한다면 지상으로 올라가 높디 높은 저 하늘을 보는 걸텐데. 그것도 취미인가 싶긴하다. 그저 끌릴때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 한참을 보다 내려오는 건데 취미보다는 습관이지 않을까.
아직까지 별다른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게 눈에 보여서 지우가 저한테 저렇게 많이 가져다주는건가 싶지만, 언제부턴가 제 방 한켠을 차지해가는 물건들을 보며 새삼 군인시절보다 제것이 더 많아진 기분이 들었다.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거 불온서적이랬던가? 조금 낡아진 책을 손에 들고 아무페이지나 펼쳐보았다. 공용어로 적혀있지만 딱히 이해가지 않는 내용이 주를 이뤘기에 다시 덮어다 책장에 끼워넣었다. 그외에도 책장에 끼워진 책들을 바라보았다. 동화도 있고, 소설도 있고, 뭔지 모를 책들도 간간히 끼워져있는걸로 봐선 자신이 별로 관심을 크게 가진게 없다보니 여러개를 구해다 준 것 같았다.
책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계를 바라보니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지금 날짜가 어쨌더라. 그날 부터 몇개월이 지난지 대충 감으로 세어둔 것이 있었으니 조용히 작은 노트를 펼쳐 적어둔 메모를 바라보았다.
" 언제 이렇게 됐지. "
날짜를 세어보고, 딱 1년째 되는 날이 오늘인걸 보고나서 간단하게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지금 눈치채서 별다른 인삿말을 못해주겠지만 애초에 딱히 인삿말을 건넬 사람은 없으니까. 딱 필요한 물건만 대충 제 짐가방에 챙기고는 제 방문을 열었다. 군에서 살땐 제 방이 언제나 휑 해보였는데 지금 지내는 이곳은 사람사는 것 처럼 보였다.
애초부터 이곳에서 쭈욱 지낼 생각은 아니였다. 적당히 지내다가, 잠깐 떠나있기도하고. 그럴 생각이였다. 그러니 이곳에도 큰 미련은 없었다. 그저 오비지구를 나오고, 자신이 여행을 떠난다면 다시 돌아와 쉴 곳을 등대라고 생각했을 뿐이였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이곳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이 되겠지. 방안을 물끄럼히 바라보다 방의 불을 끄고, 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지상으로 올라와 보는 달빛이 유독 구름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어보이면
등대를 떠나고, 정처없이 걸음을 옮겼다. 정처없이라기엔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가 분명했지만 중간중간 딴길로 새어나가기도 했으니 정처없이 옮기는게 맞지않을까. 그렇게 몇날며칠을 걸었을까. 익숙한 도시의 모습이 제 눈에 보였다. 아직 완전히 재건 된것은 아닌듯 들어선 지상정부의 모습엔 그날과 같은 모습이 눈에 보였다.
아직 엔소프돔을 세울정도로 복구된 것은 아닌가보네. 멍하니 지상 정부를 거닐다 내려가는 길목을 발견해 걸음을 옮겼다. 이미 한번 와봤던 적이 있고, 들어가는 것이야 어려움은 없으니까. 지하로 들어가고 지상보다는 훨 낮은 엔소프 농도에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링커였었던 몸이 어느정도 버텨주는 듯 했지만 확실히 링커일때와 아닐때의 차이는 크게 다가왔으니.
상층부를 거닐다. 웨이 대령님도 마주하고 짧막하게 대화를 나누곤 자신이 먼저 말했다. 이곳에 다시 남진 않을거지만, 그래도 제가 도울일이 있음 도울게요. 남지도 않을거면서 머물며 도와준다는 말이 조금 웃기는 일이지만 이곳이 이렇게 될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으니까. 지금 어떻든 간에 이곳은 어찌되었건 자신의 집이였었고, 고향이기도 했으니까.
" 아직은 옛 버릇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군인으로써 살때의 버릇이요. "
" '타닐'의 버릇은 에스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겁니다. "
" '타닐'의 버릇이 '에스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거라 어떻게 확신하시나요? "
마주했던 그날, 코드네임으로 살때의 버릇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거라 말하는 그에게 되물었다. 코드네임이건 이름이건 본질은 같지않던가? '나'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데 확신한다는 듯이 말하는 모습에 궁금했다. 저보다 오래 살아온 경험담인걸까. 궁금증에 고갤 기울이며 물었다. 결국 이해 못할 답을 듣고 걸음을 옮겼다.
간단히 지낼 곳을 안내 받고, 무엇부터 도우면 될지 짧게 상황을 전해들었다. 그냥 여기저기 인력자체가 부족해보이는 듯해 발닿는대로 도울 수 있는 곳부터 돕기로 했다. 하층으로 내려가 상황을 파악하거나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헤아리고 온다거나, 상층에 남아있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하는 일들을 보곤 했다.
" 어중간한 인간의 이타심이 괴로워 타닐. 이젠 단지 너희들이 말하던 그 도와주러 왔어, 란 말 조차 믿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마주하는 사람마다 화를 내고 의심할 수밖에 없어. "
" 사람을 너무 끊임없이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은데, 그 때문에 괴롭게 느껴지는건 아니고? "
상층이라 해야할까, 제법 멀쩡한 층에서 만난 패럴라이즈와 그런 대화를 했었다. 사람의 이타심이 괴롭다며 말해오는 것을 보며 짧게 답했었었다. 사람을 믿지 못해 의심하는 것이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듯 한 모습에 어딘가 어긋나는건 다들 똑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남은 이들 중 몇은 또 밖으로 향한 이들을 미워할 것이라 말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 했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더라.
나한테는? 이라 답했던가. 그 말 그대로인 느낌이 강했다. 애초에 내가 누굴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느끼는 괴리감에 이제는 익숙해져갔다. 조금 이해한 것 같다가도, 여전히 타인이 보이는 것에 이해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원인역시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생소했고, 이상하게만 다가왔으니.
그러니 그저 주변에 보이기엔 그런 '척'을 해오며 지내왔다. 이해가 되는 것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것들 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였으니까. 패럴라이즈와 이야기를 하다 더는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않고, 근처에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겼었다.
" 감자 깎아야 해. 존나 많이. "
" ...저녁은 뭐하려고? 찐감자로만 떼우게? "
방금전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감자 깎아야한다는 말에 실없이 웃었던가, 단순하게 끝내려는 것 같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지만 그래도 다인분을 요리했었다. 앨리스한테 배운게 여기서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감자나 다른 재료들을 이용해 저녁식사를 만들고. 옆에서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을 뒤로하고는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2 Traval Road
색색의 하늘이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면, 그땐 정말 아무관계도 없는 외부인으로 오는거겠지. 1년간 지냈던 방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등대에서 쓰던 방과는 다르게 정말 딱 잠을 잘수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방을 보며 어째서인지 여기서 지낼땐 제 물건이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시절 43층에서 지냈을 때도, 12살에 상층으로 올라와 사관학교 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졸업 후 군 입대 후에도. 제 집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제 물건이라 할것도 별로 안갖고 있었다.
어찌보면 누구보다 이곳에 정이없고 미련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였지 않았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도 손목에 찬 시계를 잠깐 보고는 방문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모두가 잠들시간이고 별다른 인사는 하지 않았다. 이곳을 떠났을 때도 별다른 인삿말 없이 나갔고 아예 안볼사이도 아니니말이다. 인연이 다시 닿으면 또 만나지 않을까. 이곳 바깥에서든, 내가 필요에 의해 이곳에 다시 오든 해서.
그러니 인사는 필요없다 생각했다. 딱히 편지를 남길정도로 친했냐 물으면 그정도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이 누구보다 아꼈지만 누구보다 멀리 있던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이였으니까. 그리 생각하곤 걸음을 옮겨 지상으로 향했고, 지상 1층에 보이는 폐허를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발닿는대로 움직여야지. 목적지없이 흘러가듯 다니는 여행.
" ...미치겠네. 여기가 어디야. "
너무 발닿는대로 움직였나. 길을 잃은 기분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분명 발닿는대로 움직이는 여행이였다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못볼 줄은 몰랐는데. 짧게 생각하며 숲길을 적당히 헤쳐나가며 지나갔다. 그렇게 다시 한참을 걸었을까 느껴지는 허기에 가방에서 육포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선 쉴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어디 안쪽으로 들어가기엔 마땅한 공간이 안보여 쉬어가긴 개뿔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엔소프 농도에 의한 멀미는 몇년전 겨울 땅에서 참 지독하게도 겪었는데 그거 잠깐 견딘것이 도움이 되는건지 몸이 그세 적응을 한건지 아님 링커였던 몸이여서인지 숨이 조금 턱 막히는 것을 제외하면 다니는 것에 큰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래도 마을이라도 있음 하루에서 이틀정도 쉴 수 있겠지 싶어 돌아보던 중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 -- --- ---- ]
글씨가 바래져있지만 저렇게 팻말이 세워져 있는것을 보면 근처에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마침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무리를 발견했고 그들도 근처에 있던 저를 발견해서인가 별 큰 무리없이 마을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행객이라고 하니 하루이틀정도는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일을 조금 도와주면 여행물자도 챙겨 준다는 말에 그리 하겠다하며 마을로 들어섰었다.
여관방 같은 곳에 안내를 받고, 마을안을 자유롭게 둘러봐도 된다 하는 주민들의 말에 조용히 고갤 끄덕이며 대충 방에 자신이 가져온 짐을 풀곤 마을 내부를 둘러보았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꽤나 규모가 있는 마을인지 사람들이 조금 와글와글 모여있는게 보였고 공동체 생활인 듯 가판대가 보이지만 무언갈 판매하기보단 물물교환 내지 나눔을 위해 세워둔 것 처럼 보였다.
실제로도 사람들이 무언갈 교환하거나 받아가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일은 내일부터 도와주면 된다고 했으니 오늘은 적당히 구경하고 쉬는게 낫겠지 싶어 시장으로 보이는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동물 고기, 위쪽에서 재배한 듯한 채소들, 그외 숲에서 구해온 듯한 과일같은 것들을 바라보다 주민들의 질문에 적당히 답해주었었다.
" 타닐? "
그러고보면 이때 여기서 저를 부르는 소리에 내가 무슨 반응이였더라. 그날 이후로 코드네임보단 이름으로 불린 횟수가 더 많았고, 자신을 구태여 코드네임으로 부르는이들은 적었다. 하물며 저와 안면식도 없는 이곳 주민들이 제 코드네임을 알리가 없었다. 알았다하더라도 저리 적대감없이 말할리는 없었으니까. 조금 멍한표정으로 돌아보니 저를 보며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있는 선배가 보였다.
멀리 떠난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사는건가? 무슨 반응을 해야하지? 순식간에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그저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으니 처음엔 이상하게 봤던 주민들도 둘이 아는사이인가 싶어 배려해준다며 하나 둘 자리를 떠났고, 시장판 길목에 둘만 남게되자 반사적으로 도망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았다.
틀어진 관계를 되돌리려 해도 더 틀어지기 바빴었는데, 지금 다시 만난다 해서 그게 변할리는 없으니까. 몇번을 다시 되풀이한다해서 괜찮아질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도망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에 더는 동요하지 말고 태연하게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웃어보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 오랜만이네요. 여기서 사는거에요? "
" 아니, 여기말고 다른곳에서 살아. 여긴 잠깐 식량구하러 온거야. "
태연하게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적당히 인사하고 헤어지면 되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웃으며 바라보다 이리와보라는 듯한 손짓에 눈만 꿈뻑이며 바라보자 더는 손짓하지 않고 선배쪽에서 먼저 다가왔다. 그리곤 제 머리에 턱 손을 얹더니 부드럽게 쓰담는 손길에 반사적으로 고갤 들어 선배를 바라보았다. 왜? 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제게 무언갈 말해주는 것 같았다.
미안해 였었나. 그 이후로는 들려오는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말이 끝나기 전부터, 안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새어나오다 못해 흘러 넘치기 시작했어서, 억지로 갈무리하던 것들이 다 새어나오는 기분이였어서. 그래서 그냥 그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내 울었던 것 같았다. 그냥 예전처럼 대해주려하는게 기뻐서 설명이고 뭐고 들을새도 없이 울었던 것 같았다.
애초에 그날 이후로 별다른 기대하지 않았었다. 도망치는 이를 붙잡을 이유도 없었고, 아예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간다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도 안하고 지냈으니까. 어디로 가는지, 누구와 함께하는지 혼자 향하는지도 몰랐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알고지낸 시간은 오래됐는데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인듯한 기분이였었다.
한참을 울다가 겨우 진정되 숨을 골랐다. 조금 진정하고나니 그제서야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일이 있었는지. 그냥 짧은 안부 인사겸 해서 대화를 나눴었다. 아까보다는 훨 자연스레 나오는 말에 긴장이 그제서야 풀린 기분이였다. 아님 그저 마음 속 어딘가에 있던 짐을 내려놔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짧지만 긴 대화를 이어갔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바라던것이 무엇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잠깐 지냈던 마을에서 건조 식품들을 챙겨다 가방에 넣고는 짧게 인사한 뒤 마을을 나섰다. 적당히 오래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챙겨준 덕에 너무 자주 먹지만 않으면 적당히 버티겠거니 싶었다. 슬슬 해가져가는 듯 여러색들이 뒤섞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엔소프 농도가 짙은 바깥에서 야영을 하기란 쉬운일은 아니였다. 겨울땅에서 겪은 것 만큼은 아니지만 멍하니 있다보면 어지러울 때도 있었고, 걷다가도 속이 울렁거리는 감각이 들이닥치고는 했으니까. 단순히 링커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감각들을 계속 느끼는 것에 있어서 불편한점도 있었지만 사람은 적응을 한다고 하던가.
계속해서 같은 환경에 노출되다보니 익숙해지는 감각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내 몸상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겨울땅에서처럼 피를 토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한 멀미정도니까 괜찮지 않나. 하는생각을 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닌 것 같았다.
" 그렇게 봐도 너 줄건 없어... "
가끔씩 이상하게 작은 동물들이나 새 같은 것들이 꼬여서 저를 따라오고는 했었다. 얼마안가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가는듯 사라졌지만, 이따금씩 다가와 제가 먹는 것을 노리는 건지, 아님 그저 사람에 관심이 많은건지 경계심 없이 다가오는 모습에 한숨을 쉰적이 두어번정도인가 있었다.
내가 이런 애들한테 잘 끌리는 인상인건지, 아님 내가 보는애들이 죄다 이런 성격인건지. 혹은 둘다인지... 짧은 고민을 하며 그날 하루 야영할 곳을 찾아다 걸음을 옮겼다. 임시로 땅을 파고 들어갈 공간도 보이지않고, 그렇다해서 몸을 숨길 동굴 같은 곳도 보이지 않자 점차적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오늘은 그냥 지상에서 밤을 지새야 겠단 생각을 했다.
적당히 쉴만한 곳을 대충 만들고는 모닥불을 피웠다. 적당히 임시 야영지가 만들어지고, 모닥불 근처에 앉아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적당히 일렁이는 불꽃을 물끄럼히 보다 고갤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완전히 밤이 된것은 아닌지 어둠이 옅게 드리워지고, 자주빛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에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 짧게 끄적였다. 밝은 부분에서 서서히 어둠이 드리워지는, 검은색 하나 밖에 없어 그림자가 짙어지는 느낌으로 그려지자 멍하니 노트를 보고는 다음장으로 넘겼다.
앞장과는 다르게 비어있어 하얀 좋이를 보며 노트와 하늘을 번갈아 보더니 모닥불 불빛에 의지해 짧게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일기 같지만 일기는 아닌, 내 이야기가 적혀있지만 막상 보면 내 이야기가 아닌. 짧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적어내려갔다. 언제부터 이걸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거의 버릇마냥 적게 되는 무언가였다.
아마 이전에 플리트- 에일라와의 대화에서 동화를 써보자라고 말이 나와서 그랬나. 발닿는대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언제 써내려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급하게 쓰기보단 틈틈히 무언갈 적어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쓰던것이 이젠 버릇처럼 이어지는 기분이였다.
하늘을 보던 버릇이 왜 생겨난걸까. 그저 막연하게 자유를 갈망해서? 아니면 아무런 걱정도 없어보여서? 언제든, 몇번이든 생각해보아도 답이 내려지진 않았다. 처음 시작은 매우 단순했었는데, 임무에 나가고 봤던 밤하늘이 그렇게 예뻤었으니까. 지하에서 보던 인공하늘보다 더 아름답다 느꼈으니까. 이리 생각하면 또 동경이였나 싶지만 어느순간부터는 지하의 하늘을 보아도 만족했었기에 그런건 아닌 듯 싶었다.
큰변화없이 흘러가니까, 색이 단순하게 바뀌어가며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보게된걸까. 그런 생각이 가끔씩 들곤 했었다. 동경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가끔 이렇게 밖에서 하루를 꼬박 지새울 때 드는 생각이였다. 엔소프 농도가 짙어서 생각이 단순해져가는 걸까. 딱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떠올리다 노트에 적어내려가던 손을 멈추고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금 피워냈다.
*Tanyl Ending Theme Song.
千と千尋の神隠しOST - いのちの名前 (cover.Roel)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었지.
낡이 밝고, 이젠 다 타서 재가된 모닥불을 대충 발로 흩뿌려두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크리처를 피해 몸을 숨기기도 하고, 동물들과 마주하면 짧게 인사를 나누기도하고. 조금 복잡해보이는 숲에서 길을 잃을뻔 했지만 다행히 길을 잃기전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숲을 지나면 다시 보이는 것은 숲이였고, 가끔씩 동굴도 지나가고는 하였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들어갔다가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기기도 하였지만 탐사대로 일한 경력이 확실히 여행하면서 생존에 도움이 많이 되긴 하였다. 크리처들이 매번 새로운 개체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알려진 정보들을 얼추 기억하고 있었으니 전투없이 피해가거나 하는 것이 꽤나 쉬운편이였다.
그렇게 피해다니며 발닿는대로 한참을 걸었을까, 숲을 빠져나가고 눈앞에 펼쳐진 황야에 다시 숲으로 들어가야하나 싶지만서도 보이는 멀쩡한 길이 이곳 뿐이였기에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이런 황야에 마을이 있을까 싶지만 마을은 보통 지하에 세우고는 하니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적어도 이렇게 사방이 뚫린 곳이면 습격은 숲에서보단 덜 받겠거니 싶어 걸음을 옮기던 중. 초록색들 사이에 샛노란색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는데. 걸음을 계속 옮길수록 드문드문이지만 이어지는 노란색들의 모습에 자세히 살펴보니 일전에 책에서 봤던 꽃이였다. 민들레였나. 꽃들이 피어있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다. 고갤 들어 앞을 바라보니 마을로 보이는 듯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에 그것도 바깥에 세워진 마을? 토착민 같은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들어서자 안쪽에서 꽤 피어있는 듯 민들레들이 눈에 계속 들어왔다.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인기척이 느껴져야하는데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마을 내부를 보며 사람이 살다가 버려진 곳인가 싶었다. 그럼 적당히 빈집에 들어가서 오늘 쉬다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리 생각하며 마을을 가로질러가던 중.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 방향으로 고갤 틀자 익숙한듯 익숙하지 않은이가 서있었다.
" ? "
" ? "
정말 가벼운 대화 밖에 나누지 않았던 사람인데, 여기서 다시 마주할줄은 몰랐다. 애초에 그날 이후 행방이 어떤지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 오랜만이네요? "
" 오랜만...이죠...? "
조금 어색한 기류가 흐르다. 내쪽에서 먼저 물었다. 여기에 무슨일로 있냐고. 그리 물으니 들어오는 답변은 산책이라는 답변이였다. 되게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에 고개만 기울이다 물끄럼히 바라보니 이번엔 그가 먼저 말을 꺼내왔다. 마을에서 쉬다 갈래요? 그리 말하며 따라오라는 듯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고개만 갸웃하다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상에서 봤던 곳은 위장도시였는지 길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니 보이는 것은 지하에 세워진 마을이였다. 도시라기엔 아직 작고, 마을이라하기엔 큰 규모로 보이는 곳에 지하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사람도 많지도 그렇다고해서 적지도 않은 인원이 눈에 보였고, 대체적으로 아직 일들이 바쁜듯 여럿이 움직이는 것이 지나가면서 보이고는 했다.
" 에스파? "
" 캐럴? "
마을안내를 가볍게 받으며, 쉴만한 곳을 알려주겠다는 말에 가볍게 따라 걷던 중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갤 돌리니 이번엔 캐럴이 서있었다. 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여기에 루먼 그도 있고, 캐럴도 있는지. 의문 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날 이후로 다시보는 얼굴이 반가워 짧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 에스파가 여기까진 어쩐일이에요? "
" 그냥 발닿는대로 걷다보니까 오게됐어. 원랜 위에 있었는데 루먼이랑 마주쳐서 따라들어온거고... "
" 그렇구나... 어서와요! 아직 좀 바쁘긴하지만 그래도 좋은곳이니까! "
캐럴이 그리 말하며 제 등을 팡팡 두드렸고, 두드린 충격 때문인지 아님 계속 걸었던 피로감 때문인지 이전에 다쳤던 상처가 터진듯, 몸 한쪽에 욱신거림이 이어졌다. 아 하는 짧은 소리를 내며 캐럴을 바라보자 캐럴도 루먼도 저를 보며 무슨일이냐는 듯 고갤 갸웃했고, 그에 태연하게 답했다.
" 상처터졌나봐. "
겉옷을 거둬보이자 보이는 핏자국에 캐럴이 호들갑을 떨며 저를 붙잡고 치료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근데 캐럴 뛰니까 나 아픈데.
*
상처 치료를 끝내고,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의 말은 그저 흘려들었다. 확실히 저가 대충했던 치료와는 다르게 의사의 손길이라 그런가 깔끔하게 매어진 붕대들을 가만히 보다 제가 있는 치료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를 물끄럼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마주하고 대화하는것이 세번째인가. 서로가 군인이였을 때도, 서로가 반대쪽에 속했을 때도, 정말 짧고 간단한 대화밖에 이어지지 않았었지.
처음엔 그냥 마을에 소속된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의사에게 치료받으며 그가 이곳 지도자와 같은 위치라는 말을 들었었다. 중령과 대위, 저항군과 소령. 그리고 이젠 도시의 지도자와 여행자. 어째 한번도 서로가 비슷하거나 같았던 적이 없던 것 같은 느낌에 짧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제게 무슨일인가 싶은 마음에 고갤 들어 바라보자 제가 앉은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은 그가 말했다.
" 상처는 좀 어때요? "
" 덕분에 금방 나을 것 같긴한데... 글쎄요. 원래부터 약이 잘 안받다보니까. "
" 이전부터 약이 잘 안받는 체질이었습니까? "
" 링크 때문에 체질이 완전히 변했거든요. "
제 링크였던 독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링크가 발현됨과 동시에 체질 자체가 뒤바뀌었었다. 그덕에 약도 안들어서 다칠때마다 고역이였지. 그래도 링크 때문에 변한 것을 아니까 그러려니 하고 살고있었는데 링크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한 제 체질을 보며 한번 변한 체질이 뒤바뀌진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의사한테도 아까 이말을 하니까 그런건 처음듣는다며 적당히 약을 바르고 갔지만, 아마도 그가 발라준 연고는 제게 제대로 들지 않을 것이였다.
그 뒤로도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지금까지 뭐하고 지냈냐는 물음에 그냥 저가 이곳까지 오면서 있던일들을 이야기 해줬다. 발닿는대로 여행하면서 봤던 것들이라던가, 동물들과 종종 마주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들을 꺼내고, 저역시도 되물었다. 여긴 언제부터 만들었는지, 뭐하는 곳인지. 들려오는 답으로는 3년전 그날 이후 사람들과 함께 떠나 만든 종교도시라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 완전히 안정화 된것은 아니라서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많다고.
대부분의 저항군 애들은 등대쪽으로 가서 사는 줄 알았는데 이사람은 또 아니였구나 싶은 생각에 짧게 고갤 끄덕였다. 그러고보면 캐럴도 여기 있었으니까, 밖으로 나간 모든 이들이 등대 쪽에서만 살으리란 법도 없으니, 어느정도 납득이 되고는 했다.
" 그러고보니, 앞으로 계속 이렇게 돌아다닐건가요? "
붕대감긴 손을 쥐락펴락 하고 있으니 그가 저를 향해 물어왔다. 발닿는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했으니 그저 묻는걸까? 그의 말에 큰 생각없이 짧게 답했다.
" 아마도? 마땅히 계획한건 없긴한데,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
그때 그 답을 듣고 그가 무슨 표정이였더라. 웃고 있었던가.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그날 짧은 대화이후, 제게 몸 상처가 나으면 도시 일을 도와달라는 말에 흔쾌히 그러겠다 답했었다. 상처는 느리지만 그래도 지혈을 제대로 하고, 약이 어느정도 들긴 들었던건지, 아니면 편한 곳에서 쉬게 되어서 그런지 서서히 낫는 모습이 보였다. 하루 한번 갈던 거즈를 이젠 2~3일에 한번 갈아도 되겠단 진단을 듣고 진료실에서 나와 마을 내부를 천천히 걸어다녔다.
몸상태가 성치 않다는것이 알려져서인가 저에게 크게 무언갈 시키는 이들은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다른 이들과 같이 다인분의 식사준비라던가 등의 일들이 전부였다. 식사준비 그마저도 재료 손질 외에 하는일은 크게 없었다. 환자 보호라나 뭐라나... 그래서 대부분 시간을 마을 구경 혹은 저가 지내라고 내어준 방에서 앉아 시간을 떼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조금 태평하게 있었을까, 그때 위에서 봤던 민들레 밭이 떠올라 방에서 나와 걸음을 옮겨 지상으로 올라갔다. 이미 몇번 나와보기도 했었고, 지하보단 역시 지상이 더 나은 느낌이여서일까. 가볍게 부는 바람에 숨을 길게 내쉬고는 민들레 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장도시 안쪽에도 가득 피어난 모습에 가볍게 걷던 중 보이는 붉은 머리에 그를 부를까 하다가도 그냥 부러 기척을 일부러 크게 내며 다가가 톡 건들였다.
" 캐럴. 뭐하고 있어? "
" 깜짝이야. 에스파였네요. 뭐하고 있긴요 꽃밭 가꾸고 있죠. "
그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아래를 바라보면 꺾여있던 꽃이 다시 살아난듯 휘어져있지만 다시 몽우리를 맺은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외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확실히 사람 손길이 닿은게 맞는 듯. 잘 가꿔졌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는 했다. 이 넓은 곳을 혼자서 가꾼걸까. 하는 생각에 민들레 밭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 그가 저를 가볍게 건들이며 물어왔다.
" 에스파, 혹시 노래 아는거 있어요? "
" 노래? 아는건 하나인데, 자장가라고 배워서. "
" 자장가? 누가 알려줬는데요? "
" 키르케 중령님이. "
키르케 중령님의 이야기를 꺼내자 순간적으로 달라보이는 분위기에 고갤 갸웃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제게 배운 노래를 불러달라 하였다. 무슨일인가 싶다가도 둘 사이에 뭔가가 있었겠거니 싶어 딱히 자세히 묻진 않고 제게 부탁하는 말에 짧게 흥얼거리듯 불러주었다. 배운 부분은 짧은 것이었지만 그때 불렀던 것 처럼 불러주니 가만히 듣고 있다 제가 끝마치자 언제 이런걸 배워왔냐며 다시 웃으며 재잘재잘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기도 알려주겠다며, 이것저것 아는 노래들을 제게 불러주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와서 만든 노래라며 불러주는 것도 있었고 처음부터 있었던 노래들도 가볍게 불러주며 저보고 따라해보라며 따라부르기 쉽게 천천히 불러주기도 했다. 가사를 붙여 부르다가도 어쩔땐 허밍으로만 불러주는 것도 있어 꽤 즐겁게 배웠던 것 같았다.
" ..누가 오는 것 같은데? "
" 누가 온다구요? 누구지? "
마을 바깥쪽이여서일까, 저와 캐럴을 제외하면 느껴지지 않던 주변 인기척에 갑자기 기척이 잡히자 민들레들을 보다가도 고갤 들어 기척이 느껴지는 쪽을 돌아보았다. 여기에 오는 이가 있는건가, 혹은 적대세력인가에 대한 생각을 잠깐하다 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니 익숙한 두얼굴과 마주 했다.
" ...지우랑 맥? "
" ...어. "
여기까지는 어쩐일인건지, 아님 원래 오던 곳이라 온건지. 등대에서 보던이들을 마주하니 감회가 나름 새롭기는 했었다.
*
맥과 지우가 이곳에 오고, 그로부터 몇주가 더 지났다. 상처는 이제 완전히 나았고 도움을 받기도 했고,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던 만큼 이곳에서 좀 더 지내면서 저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해주고는 했다. 요리도 요리지만 가끔씩 나가는 순찰팀과 같이 나가 도시 주변에 크리처가 나오는지 아닌지, 혹시라도 바깥에서 길을 잃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러 나가는 것이였는데 농사일은 원래부터 잘 못하는 편이였고, 요리도 썩 잘하는 건 아니였던지라 자신은 주로 순찰팀에 섞여서 움직이고는 했다.
지우도 그런건지 대부분 저와 같이 나가고는 했는데 크리처와 마주하고, 큰 개체가 아닌이상은 딱히 여럿이서 덤빌일도 아니다보니 저 혼자서 처리하는 것이 많고는 했다. 그 탓에 다치기도 자주 다치고 그런 저를 말리는지 아님 말리려다 실패해서 따라온건지 세트로 다치게 되는 지우도 있었다. 치료해주는 의사가 처음엔 걱정하는가 싶다가도 몇주, 몇달 간격으로 순찰을 나가면서 매번 다쳐오는 인원이 저 아님 지우로 정해져있자 이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 다음부터는 잔소리하기전에 도망쳐야... "
" 그러기전에 내가 형 잡아다가 데려가지 않을까요? "
" 나 거기다 두고 네가 도망가려는건 아니고? "
" 들켰나? "
" 둘 다 얌전히 치료나 받아요. 괜히 도망치지말고. "
가끔씩 산책을 하면서 지우랑 실없는 소리를 하다보면 언제 지나가는 중이였는지 루먼이 옆에와서 짧게 한소리를 하고가고는 했다. 루먼이 없을땐 맥이 와서 그러기도했고, 어쩔때는 캐럴도 합세해서 말하기도 했었다. 이후에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였다. 도와달라 찾아오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느냐 바삐 움직이고, 가끔 애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
하루는 그냥 가볍게 산책하기도 하면서 지상에 올라가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따금 자신이 도시밖까지 산책을 나가면 뒤에 누군가가 따라붙는 인기척이 느껴지고는 했다. 감시 목적인건지 제대로 지우지도 않은 기척에 짧게 숨을 내뱉으며 돌아간적이 몇번 있기도 했었다. 감시를 할거면 제대로 기척을 지우던가, 아님 그냥 대놓고 따라오던가 저게 뭐하는거지 싶었지만 대충 생각이 있으니 저러겠지 싶어 딱히 터치하진 않았다.
말마따라 그냥 감시일뿐이지 저한테 직접적으로 다가온적도 없었고, 마을 밖으로 나가려는것만 아니면 딱히 붙어다니는 것도 아니였으니. 선을 넘는다 싶으면 루먼에게 말하면 되겠지 싶어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았다.
*
꿈을 꾸었다. 내가 과거 군인이였을 적 꿈이. 지금의 내가 방관자로 상황을 바라보고 내가 겪은일들을 하나 씩 내 눈앞에서 리플레이 되어갔다. 탐사대 있을 시절 크리처를 잡다 죽어간 다른 동료들 테라부대에 들어가게 되고 나서 보았던 모든 상황들. 그리고 내가 겪은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때 그 모습들이 눈앞에서 다시 되풀이되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꿈이야. 꿈이니까 잊어. 잊자. 잊어야 해. 나를 위해서라도. 여기서 다시 그렇게 되면
눈을 질끈 감아도, 억지로 보여지는 듯한 모습에 몸을 웅크렸다. 보고싶지않아. 보지않을거야. 속으로 그리 되뇌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것들을 무시했다. 이걸 다시 본다해서 무슨 의미가 있지. 이미 지난일이야. 그저 악몽일뿐이야 이건, 그들은 살아있어. 죽지않았어.
죽지않고 살아있는걸 봤는- 정말 네 눈으로 직접 봤어?
" 우윽... " 두 눈 뜨고 똑똑히 바라봐, 과연 네가 생각하는게 진실인지.
꿈에서 깨어나 숨을 들이켰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않았다. 어딘가 꽉 막힌 느낌이였다. 답답했다. 토할 것 같았다. 몸의 떨림이 멈추지않았다. 진정해야하는데 진정되지 않았다. 제발, 차라리 누가 옆에 있었으면. 그런생각을 하다 문득 제 방에 나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모두가 잠들시간이라 꺼져있는 불빛에 새카만 어둠이 드리워져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냥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너도 결국은 도망치는구나. 원래부터 도망치고는했지. 소문에 시달릴때도 그랬잖아? 해명하기는 커녕 무시로 일관하며 도망친거니까.
무슨 정신으로 방을 나서고, 집을 나서서 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르겠다. 온통 어두워 앞뒤구분도 안되는 와중에도 발닿는대로 그냥 무작정 걸었다. 막다른길에도 막혀보고, 뒤돌아 다시 걸음을 옮기고, 그러다보인 마을 입구를 보며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겨 지상으로 나갔다. 여기 있고싶지 않아. 차라리 바깥이. 정말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거야?
위장도시로 올라오고, 그냥 무작정 걸었다. 도시 바깥으로 향해도 그저 걸었다.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였다. 귓가에 맴돌던 환청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느낌이였다. 고갤 들어 바라보면 아직 완전히 차지 않은 달이 빛나고 있었고, 그 주위로 별들이 빛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상하리 만큼 드는 안정감에 그제서야 마른세수를 하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주변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느껴지는 기척이 둘.. 아니 셋인걸까. 보통 여기까지 나오면 둘 정도가 따라붙었는데 한명은 누굴까. 하는 생각으로 고갤 돌려 뒤를 바라보자 지우가 제 뒤에 서있었다. 언제부터 따라온거지. 아님 먼저 나와있다가 날 발견하고 따라온걸까. 짧게 생각을 마치곤 시선을 맞추자 저를 보며 손을 가볍게 흔들더니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넌 매번 웃고있네.
" 언제부터 따라온거야? "
" 음~ 제가 좀 기척을 잘 감추죠? "
" 탐사대 출신이 못감추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
" 그래도! 아, 하늘 예쁘죠? "
제 말에 가벼이 답해주며, 하늘이 예쁘다는 말에 그저 가만히 고갤 끄덕였다. 산책할까요? 하고 묻는 말에 조용히 끄덕이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제 옆으로 다가와 걸음을 맞추며 보이는 민들레 밭을 거닐었다. 도시 바깥까지 민들레들이 이어져있어 산책하다가도 너무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되서 좋은 듯 했다.
서로 아무말없이 민들레밭을 걸으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는 배려인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침묵이 그닥 어색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밤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여전히 느껴지는 인기척들을 뒤로 하고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제게 물어왔다.
" 악몽꾸는 것 같은데, 괜찮아? "
" 안괜찮을게 뭐있어. 그냥 꿈인데. "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하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도, 나한테도 좋은거니까. 그리 답했던 것 같았다. 그리곤 한참을 저를 바라보다가 네가 말했었지. 자긴 안괜찮은 적 많다고.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그런말을 웃으면서 잘 말한다 싶었다. 자신이 계속 웃으며 넘기려 했었던 것 만큼 너도 그게 버릇인가. 가만히 듣고 있다 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형도 무슨 악몽을 꾸나 싶었어. 그 말을 듣고 하늘로 가있던 시선을 돌려 지우를 바라봤었다. 내가 꾸는 악몽이 뭔지 알아도 네가 내 짐을 덜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닐텐데, 온전히 내 몫인 것을 네가 가져갈 수는 없는걸텐데 뭐때문에 그렇게 물어보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지친건지 아님 그저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던 건지 지우 네게 말했던 것 같았다.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 뭐 때문에 이러는지. 그저 단순히 네가 나한테 등대에서부터 잘해줘서 이런 생각이 든걸까.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피어올라 사라져갈때즈음 대뜸 네가 저한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손 잡을까? "
" ...손? "
응, 손. 그리 말하며 제게 내밀고 있는 손을 바라보다 가만히 붙잡았다. 가만히 잡고 있으니 사람의 체온이 닿는 느낌에 괜히 잡았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듯 했다. 갑자기 손은 왜 잡자고 한걸까. 궁금해 물어보자 혼자가 아니라는 답이 들려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옆에 멀쩡히 있으니까, 내 괴로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외롭지 말라했다.
그 말이 뭐라고 제게 다가오는지, 그냥 사람의 체온이 닿아 있어서 인가 안에서 소용돌이 치듯 복잡해졌던 무언가가 가라앉는 기분이였다. 이렇게까지 안정되는건가 싶을정도로 가라앉아 고요해지는 기분에 괜히 힘을 주어 손을 쥐어보였다.
" 그래도 우리 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
" ...그래, 살아있어서 다행이지. "
살아서 다행이지. 죽지않아서 다행이야. 너도 나도, 여깄는 사람들 모두.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곳에서 지내는 것도 꽤나 시간이 오래 지났다. 그동안 일이 많다면 많았고 적다면 적었다. 주기적으로 가는 순찰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혼자 튀어나가면 날 따라 지우가 따라왔고, 나란히 둘이서 다치고 돌아가서 혼나고. 가벼운 일상이 주를 이루며 지내왔다. 이따금씩 붙는 듯한 감시에는 이젠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는 했다.
이젠 규모가 어느정도 키워져 마을보단 도시라고 명칭하는 것이 알맞을 정도로 키워졌다. 애초에 명칭부터가 빛의 도시였지만, 그냥 제안의 나름 기준이였다. 한창 바쁠때 합류해서 지내다보니 이곳 사람들과는 꽤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오비지구에 있던 군인인줄도 몰랐던 사람들도 있었고
있다하더라도 딱히 시비가 걸리는 일도 없었고, 과거일은 묻지 않겠다는 성향이 보여서인지. 아님 이곳이 종교도시라 종교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크게 신경쓰지않는 것인지 이유야 어찌되었건 제게 있어서 편한 것은 사실이였다. 같이 나가는 순찰팀은 의외로 제 지시를 잘 따라주다보니 서로 피해가 크게 없이 돌아오는 날이 늘어났고.
다쳐도 저나 지우가 다치다보니 의사나 제단사들에게 눈총받는 일도 조금 있었다. 노골적인 싫음의 표현보단 한숨쉬며 바라보는 것이 더 강했지만서도.
" 그만 좀 다쳐와요. 둘 다 목숨이 무슨 여러개라도 되요? "
" 몸이 먼저 나가는걸 어떡해. "
" 타닐 형이 혼자 튀어나가는걸 어떡해. "
"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
다치고 치료를 받고 쉬러 가면 듣는 말이였다. 맥이 답답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변명이 아니라 정말 그런걸 어떡하라는 건지. 너도 탐사대에 몇십년 몸담고 있어봐. 몸이 그냥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라며 실없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했었다.
" 무슨일인가요? "
" 나한테 붙여둔 감시역들, 떼줄 수 있나싶어서요. "
" 감시역이요? "
" ? "
매번 산책을 나갈때마다, 혹은 그냥 종종 도시 바깥을 나설때마다 따라 붙는것이 귀찮기도 했고. 누가 제 뒤를 밟는 다는 것 자체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였던지라 루먼을 찾아가 말하기도 했었는데 정말 모른다는 듯이 답하는 모습을 보며 어이없기도 했었다. 자발적으로 감시한건가 싶어 짧게 한숨을 내쉬자 말해두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뒤로는 정말 평범한 일상이였다. 순찰을 다녀오고, 이따금씩 오는 편지에 답을하고. 필요한 물자를 얻으러 루먼, 맥, 지우, 자신 이렇게 넷이서 도시 밖을 다녀오기도 했고, 어쩌다 한번은 다같이 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민들레 밭에서 피크닉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
이런 일상을 보낸적이 내가 있었나, 아마 없었던 것 같기도 한데. 짧게 생각을 이어가며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생각하다가도 천천히 글을 써내려갔다. 여행하면서 적어 내려갔던 것의 연장으로. 이젠 어느정도 구실이 갖춰진 동화책을 보며 짧게 웃어보였다. 이정도면 이제 충분하겠지. 제 손길을 많이 타 조금 낡아보이는 책을 가볍게 쓸어내리고는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러고보니, 지우가 최근에 뭘 심었다했더라. 청매화였나?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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